King's Evangelical Divinity School

22 August 2015

Israel and the Church: The Past (in Korean)

I gave a talk at a conference held by Korean churches in London (July 2015) to explore the issu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hurch and Israel. The following paper was the basis of my talk and has been kindly translated into Korean by Kyuwon Park, one of the conference organisers. (Scroll down for footnotes).


이스라엘과 교회 (과거)
-      대체 신학에 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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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 스미쓰[1]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치 말고 고요치 마소서
대저 주의 원수가 훤화하며
주를 한하는 자가 머리를 들었나이다
저희가 주의 백성을 치려하여 간계를 꾀하며
주의 숨긴 자를 치려고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가서 저희를 끊어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하나이다
(시편 83: 1-4)


1. 이스라엘을 도말하고자 하는 역사적 시도들

시편 기자의 위의 말씀은 약 3000년 전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3000여 년이 이미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을 전후로 하여 아랍 지도자들에 의해 자행된 사건들과 언급된 내용들을 살펴 보라.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출범 즉시 다섯 개의 아랍 국가들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그리고 이라크 [사우디에 의존적인 국가들의 협력과 더불어])이 새로 세워진 이 유대 국가를 대항해 전쟁을 선포하고, 파멸을 도모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주변국들에 의해 이스라엘을 전멸시키려는 이러한 도모는 계속되었다. 1965년 이집트의 대통령 나세르 (Nasser)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의 목적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를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이스라엘 국가의 파멸을 목적으로 한다. 즉각적 목표: 아랍 전투력을 최고로 끌어 올리는 것. 국가적 목표: 이스라엘을 전멸시키는 것[2]

육일 전쟁 (the Six-Day War)에 이르기까지 이런 집단 학살적 발언들이 극에 달했다. 1967 5월 카이로 라디오라는 방송에서 언급하기를: “아랍인들은 지도에서 이스라엘을 지우기까지 굳게 단결한다”. 직후 이라크 대통령은 선언하기를: “이스라엘의 존재는 정정되어야만 하는 오류이다우리의 목표는 분명하다 이스라엘을 지도로부터 지우는 것.시리아 국방부 장관은 그의 군대가 전쟁을 치룰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면서 전멸의 전쟁을 시작할 때가 도달했다고 주장했다.[3]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제거하고자 하는 이런 표현들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이것은 가자 지구를 자치하고 있는 테러 집단 하마스가 자신의 헌장에 선언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스라엘은 이슬람이 그 흔적을 없애기까지만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다팔레스타인 영토는 그 심판의 날까지 미래 모슬렘 세대들을 위해 성별 되어 있는 이슬람 성지이다[4]

레바논에 근거하고 있는 테러 집단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의 전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천명하기를:

우리의 투쟁은 이 존재 [이스라엘]흔적이 없어질 때 비로소 끝날 것이다. 우리는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개별적이던지 종합적이던지 간에 어떤 타협도, 휴전도, 평화 협정도 인정할 수 없다.[5]

몇 년전, 당시 이란의 대통령이던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Mahmoud Ahmadinejad)는 이스라엘의 존재는 인류에 대한 모독이고 모든 나라에 대한 모욕이다고 하며, 이스라엘이 언젠가 지도에서 사라지는날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6] 지금부터 이주 전엔 이란의 온건한정치인이자 종교인인 아야톨라 아크바 하쉐미-라프산자니 (Ayatollah Akbar Hashemi-Rafsanjani)도 언젠가 이스라엘이 지도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고 보도되었다.[7]

흥미롭게도 시편 83 6-8절에서 시편 기자는 약 3000년 전 이스라엘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는 적들이 누구인지 설명한다. 1948년 이후로 이스라엘을 없애버리고자 애썼던 나라들, 지도자들, 조직들의 지정학적 위치들이 이들과 대부분 동일하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편 83편이 쓰여진 이후 30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거의 변한 것이 없다. 적들은 지정학적으로 동일하고, 이스라엘을 제거하려는 의도도 동일하고 방법 무력 역시 변하지 않았다.

2. 이스라엘을 제거하려는 신학적 노력들

유대인들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택한 백성들을 향해 여전히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고 믿는 성도들에게 이런 상황은 굉장히 염려스럽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과 별개로, 어떻게 교회가 이스라엘을 성경과 하나님의 계획들과 약속들로부터 지워버리려 했는지와 관련해 길고 긴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만큼 우려할 만한 일이 없다. 본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교회로 대체하셨다는 관점, 즉 교회가 하나님의 새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을 대신하고 이스라엘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주장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론은 교체신학 (replacement theology),” 또는 대체신학 (supersessionism)”으로 불리운다.

대체신학의 첫 번째 등장은 제 1세기 로마의 교회에서인 것으로 보인다. 로마서 11 13절에서 바울은 로마의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쓰기를 이들 (이방인 성도들)이 접붙인바 된 (11: 17-24) 올리브 나무의 유대인 가지들에 대해 거만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몇몇 학자들은 로마 이방 기독교인들에 의해 표현된 이런 교만이 주후 49년 클라우디우스 (Claudius) 황제에 의한 로마로부터의 유대인들의 추방 (바울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로마로부터 추방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났던 사도행전 18: 1-3에 묘사된 대로)에 기인한 것이라고 제시한다. 후에 유대인들은 제국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허락된다 (로마서 16: 3에서 바울이 로마로 돌아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어떻게 영접하는지 보라).

로마에 거주하는 이방 기독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는 추방되었던 유대 믿는 자들이 도시와 교회로 돌아왔을 때, 이방 교회가 예전 이스라엘을 대신해 이제 스스로를 새롭고 확실한 이스라엘이라고 여겼음을 발견했으리라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이방 신자들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교만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가지를 다시 접붙이실 수 있고, 반면에 접붙임 바 된 교만한 가지들 (이방인들)을 저버리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여러 세기 동안 교회가 점점 더 이방화 되어가고 유대적 요소가 그 규모나 중요도로 볼 때 감소함으로, 교회는 그 신학에 있어서 더욱 더 교체신학화, 혹은 대체신학화 되었다. 이렇게 4세기까지 기독교는 그 표방하는 바가 주로 교체신학적 (대체신학적)이었다.

여기에서 대체신학에 어떤 종류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켄달 술렌 (R. Kendall Soulen) 교수는 대체 신학을 넓은 의미에서 세가지 종류로 구분했다.[8] 첫째는 응보적 (Punitive) 대체 신학이다. 이 관점은 유대인들이 교회로 대체된 것은 구약에서 유대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거부 (: 우상 숭배를 통해)에 대한 처벌이거나 신약에서 예수님의 메시아되심에 대한 유대인들의 거부에 대한 응보였다는 것이다. 중세 기독교 시대에 편만했던 이런 응보적 교체 신학 관점의 무자비한 주장과 언어는 때로 가혹한 대체신학 (hard supersessionism)”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 응보적 교체 신학이 교회의 가장 수치스럽고 폭력적인 반유대적 행위들을 부추겨, 종교 재판 (the Inquisition), 유대인들의 부동산과 소유 몰수, 유대인들을 갇혀 있는 지역 (또는 게토)으로 몰아 넣기, 유대인 전체 인구에 대한 추방 (: 강제로 개종시키지 못한 유대인들을 추방시킨 1942년 카톨릭 스페인)과 같은 결과들로 나타났다. 이 어두운 시기에 또한 교회의 용인으로 종교 재판자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많은 유대인들에 대한 기록들이 있다.

반면 특히 나찌 홀로코스트 이후 몇몇 개신교 성도들은 가혹하고 응보적인 의미의 대체 신학의 언어를 넘어서, 그 구제책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 중 이스라엘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즉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하나님께서 이들을 벌하셨다는 주장 대신에, 예수님의 등장과 속죄의 사역으로 구원의 경륜 중 이스라엘의 역할은 이제 완성되었다고 역설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이스라엘은 이미 그 임무를 끝냈거나 완성했다는 것이다. 술렌은 이것을 경륜적 대체신학 (Economic supersessionism)’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약화된 표현 (하지만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대체했다는 생각을 옹호하고 있는 점에서 여전히 승리주의자 [Triumphalist]들이다)으로 인해 이 대체 신학은 종종 유연한 대체신학 (soft supersessionism)”이라고 알려진다.

술렌의 세번째 분류는 구조적 대체 신학 (Structural supersessionism)”이다. 이것은 정경의 서술 (성경 이야기) 중 어떤 부분을 다른 부분들보다 더 강조해서 읽는 해석학적 경향에 기초한다. 이렇게 2-3세기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따라 교회의 주장의 전면에 있어 타락과 구속 같은 사건들을 더 강조한다. 반면 창조, 종말, 또는 이스라엘의 역할 같은 다른 성경적 주제들이나 사건들은 그저 배경으로 (즉 이 주제들은 교회 가르침에 있어서 덜 중요한 것으로) 배치한다. 즉 이러한 내용들은 언약이나 하나님의 유대인들을 부르심같은 성경적 주제들과 더불어 덜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성경 이야기를 재배치하는 이런 접근의 결과로 언약과 종말과 (성경 안에서 이스라엘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그리고 구약 성경 일반,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덜 강조된다 (또는 덜 중요하게 간주된다).

이러한 교회 역사의 중요한 첫 이 삼세기 후에 교회의 반유대교적 입장은 결국 몇몇 부분에서 반유대적 경향을 보였고, 결과적으로 중세시대와 그 이후 시기 동안 (위에서 언급된 대로) 유대인들에게 부여되었던 끔찍한 핍박을 초래했다. 응보적 대체 신학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메시아를 거부하여 죽이기까지 함으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처벌과 대체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믿음 은 유대인들에 대한 교회의 관점과 취급에 중요한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사용되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이러한 사고 체계와 관점은 홀로코스트라는 무서운 사건으로 절정에 달했다. 본인의 동료 교수인 콜린 바네스 (Colin Barnes)는 어떻게 중세 시대 유럽 교회들의 유대인들에 대한 관점과 취급이 홀로코스트 직전 유럽 교회들의 관점 및 취급과 비슷한지, 또한 이런 태도들이 실제로 교회의 지지하에 나찌들이 범했던 일들에 어떻게 기반이 되었는지 살펴보는 책을 썼다.

3. 새로운 대체신학

하나님의 계획들 가운데 이스라엘의 위치와 관련한 논의는 몇 세기 동안 교회 내에서 심도 있게 진행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계획과 목적을 현재도 유지하고 계시는가, 아니면 교회는 이제 이스라엘을 대치했고 새로운 이스라엘,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었는가? 어떤 때 신학적 논의는 논의에서 그쳤지만, 다른 때는 한없이 추한 행동으로 열매 맺었다.

홀로코스트의 공포를 넘어서면서 몇몇 기독교 신학자들의 교체 신학과 유대인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어떻게 나찌 독일의 혐오에 어느 정도로 기여했는지 재점검하면서, 후기 홀로코스트 신학이라고 알려진, 유대인들과 유대교를 좀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신학적 시각이 등장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신학적 논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반교체주의적 입장을 표방하는 우리들은 최근 몇 년 동안 특히 군사적 형태의 교체주의가 등장함을 지켜 보고 있다. 과거 몇 십년간 복음주의 계열 안에서 성장하는 반이스라엘 캠페인과 더불어 잘 알려진 몇몇 책들의 출판은 군사적이고, 굉장히 정치적이며, 논쟁적이며, 경멸적인 새로운 형태의 교체주의 (이 주제에 대한 본인의 책의 제목이 된) 서막을 알렸다. 이들은 비교적 보편적 세속 사회 속에서 성장하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단순한 반 이스라엘 성향과 우열을 다투며, 편협되게, 심지어 유대 국가를 사탄화할 정도로 현대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적이다. 새로운 교체신학은 이스라엘에만 비판적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고 믿는 기독교인들을 광신적이고, 극단적이고, 심지어 이단적으로 여기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결과로 이스라엘 [그리고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을 비롯한 그 지지자들] = 나쁘고, 아랍/무슬림 세계/반 시온주의 = 좋다라는 논리를 펼치기 위해 노력한다.

4. 결론적 소견

본인은 이 주제가 계속 진행될 것이고 반 이스라엘 정서가 복음주의 내에서 더 강력하게 될 것임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유대인들에 대한 사랑과 계획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것은 단지 몇몇 성경 구절들을 언급하는 것을 넘어서, 도전 받을 시 관련된 성경 본문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스라엘과 관련해 효과적인 신학을 형성할 것인지 종합적 지식과 이해를 갖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또한 홀로코스트 이후 어느 때 보다 광범위하게 가혹한교체 신학주의적 언어를 사용하는 응보적 교체신학이 다시 등장할 것을 믿는다. 우리는 나아가 얼마나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 (몇몇 복음주의자들을 포함해)이 자주 현대 유대 국가를 사탄화하는데 응보적 교체 신학의 용어를 사용하게 될 때 당황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많은 기독교 반 시온주의자들을 포함하는 불매, 무투자, 제재의 노력들은 어떤 의미에서 1930년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운영하는 사업들을 거부했던 일들을 떠오르게 한다. 차이는 다만 유대인이라는 단어가 이스라엘에 의해 대처되었지만 시온주의자이스라엘같은 단어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들어 보면 결국 이들이 대부분 경우들에 있어서 유대인을 대체하는 것이 분명하고, 기독교의 한 단면 가운데 반유대주의의 요소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콜린 반스 (Colin Barnes)의 책은 홀로코스트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이 점점 치명적인 정점으로의 전진이었는지 중명하고 있다. 이 책은 어떻게 유럽의 유대인들에 대한 비방이, 불매 운동, 추방, 고립, 그리고 집단 학살로까지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특히 통렬한 것은 이 형태가 중세 시대 동안 유대인들에 대한 정책과 관련하여 유럽 교회 자체 안에 반복되었고, 후에 초기 나찌 유대 정책에 대한 교회의 지원에 근거를 주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특히 염려스러운 것은 오늘날 몇몇 개신 교회들이 유대 국가를 비방하고 사악하게 여길 때 (그리고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며 비난할 때), 비슷한 경향을 반복하듯 하는 것이다. 더불어 BDS 운동 (불매 [Boycott], 비투자 [Disinvestment], 그리고 제재 [Sanctions] Movement)은 이스라엘 제품을 불매하거나, 이스라엘에 투자를 막고자 하는 구체적 목표로 세워졌다. 슬프게도 몇몇 오래된 개신교 교단들은 동일한 입장들을 발표하고 이 BDS 운동을 직접적으로 지원할 정책들을 수립하고 있다. 이렇게 유대인들에 대한 반유대주의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교회는 역사와 과거 유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배우기를 실패하고, 다시 한번 유대 국가에 대해 이런 행동들과 언어들을 반복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이런 기독교 반 이스라엘 경향은 많은 개신교에 걸쳐 뿌리 깊게 존재하는 교체 신학 때문에만 계속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교체신학을 믿는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여기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먼저 우리는 성경이 이스라엘과,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맺으신 언약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먼저 알고 이해하며, 성경으로부터 정확하고,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게, 하나님께서 더 이상 유대인들을 개의치 않으신다는 교회 내 성도들에게 바르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반교체신학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다음 세대로 이러한 가르침들을 전수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쏟아야 한다. 셋째, 유대 국가에 대해 교단의 신학과 정책을 형성하려는 정치적 동기를 가지고 있는 개인이나 위원회를 도전하며, 교회 전반적으로 우리의 목소리가 알려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스라엘의 적들이 국가로서 이스라엘을 지워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쁘다고 한다면, 이제 신학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워 버리려고 노력하는 교회의 오래된 역사가 실제로 정치적이고 경제적 영향을 주기 시작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경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듯,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참고 문헌

Colin Barnes, They Conspire Against Your People: The European Churches and the Holocaust  (Broadstairs, Kent: King’s Divinity Press, 2014).

Calvin L. Smith, ed. The Jews, Modern Israel and the New Supercessionism. Revised and Expanded Edition (Broadstairs, Kent: King’s Divinity Press, 2013).

David W. Torrance and George Taylor, Israel, God’s Servant (Milton Keynes: Paternoster, 2007).

Michael Vlach, Has the Church Replaced Israel? A Theological Evaluation (Nashville, TN: B & H, 2010).

Translated by Kyuwon Park



[1] 캘빈 스미쓰는 현재 King’s Evangelical Divinity School (www.kingsdivinity.org)의 총장이며, Centre for Jewish – Christian Studies의 학장이다.
[2] CAMERA, “Arab Threats Against Israel,” The Six-Day War website, http://www.sixdaywar.org/content/threats.asp (last accessed 9 July 2015).
[3] Ibid.
[4] Hamas Charter, 1988. Translation available through the Avalon Project, Lilian Goldman Law Library, Yale Law School website at http://avalon.law.yale.edu/20th_century/hamas.asp (accessed 9 July 2015).
[5] Hezbollah Open Letter, 1985. Available on 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website at http://www.cfr.org/terrorist-organizations-and-networks/open-letter-hizballah-program/p30967 (accessed 9 July 2015). See the note about the original statement and attempts to remove it.
[6] Rick Gladstone, “Iran’s President Calls Israel ‘an Insult to Humankind”, New York Times (17 August 2012). Available online at http://www.nytimes.com/2012/08/18/world/middleeast/in-iran-ahmadinejad-calls-israel-insult-to-humankind.html?_r=0 (last accessed 9 July 2015).
[7] Islamic Republic News Agency, “Rafsanjani: Forged Israeli regime to be wiped-off map one day”, 6 July 2015. Available at http://www.irna.ir/en/News/81673652/ (last accessed 9 July 2015).
[8] R. Kendall Soulen, The God of Israel and Christian Theology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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